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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제26대 국왕이자 요동을 다스리는 심왕이라는 두 가지 왕으로 활동한 유일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충선왕인데요. 이때부터가 몽골인과 피가 섞인 왕들이 다스렸습니다. 충선왕은 고려심왕이라고도 불렸던 인물인데요. 그런 그가 700년 전에 스마트폰도 없고 컴퓨터도 없던 시절에 원격으로 나라를 다스렸다고 하네요.

충선왕은 1275년 태어나서 1277년 세자로 책봉되고 원나라로 가서 생활했습니다.(진짜 젖만 때고 바로 원나라로 갔다.) 이지르부카라는 몽골식 이름도 있고 역사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직설적으로 이 사람은 몽골인이다라고 표현합니다.(원나라에서 고려가서 통치 좀 잘해보라고 하지만 계속 원나라 대도에 남았다.)


"'충'이 들어간 왕중에 가장 평가가 좋다"


▶무능한 놈들 중에 평가가 좋다는 거지 잘했다는 건 아닙니다. 어머니인 제국대장공주가 죽자 충선왕은 아버지 충렬왕의 후궁인 무비를 죽이며 어머니가 죽은 이유는 아비의 눈을 멀게 한 무비 때문에 죽었다고 말하며 무비를 죽이고 여러 관리들을 죽이고 유배 보냅니다.


▶이후에 원나라에서 밀어주는 충선왕이 두려웠던 충렬왕이 양위하자 충선왕이 즉위하였습니다. 그는 처음 즉위하자마자 여러 가지 개혁안을 시행했는데요. 원나라 간섭의 영향으로 인한 폐단을 철폐하고 사림원을 설치, 그리고 권문세족의 토지를 몰수하고 백성에게 나누어주려는 개혁안을 시행합니다.


▶하지만 권문세족의 힘이 막강하고 아내인 계국대장공주와 불화가 있어 권문세족의 모략으로 즉위를 다시 충렬왕에게 돌려주게 됩니다. 8개월 만의 폐위입니다.


"다시 즉위하다."


▶이후에 원성종 테무르 칸이 죽고 황제 자리를 두고 발생한 권력 다툼에 적극 참여하였습니다. 당시 황족가 가까운 인척이기에 그의 의견은 나름 발언력이 컸는데요. 충선왕은 원무종과 원인종을 지지하여 그들의 즉위에 도움이 됩니다. 결국 줄을 잘 선거죠.


▶이후에 충선왕은 심양왕(요동 지역의 왕)을 하사받고 같은 해 아버지 충렬왕이 죽자 고려의 국왕까지 같이하면서 심왕으로 격상됩니다. 그러나 자신을 버린 고려 때문일까 처음 즉위에서 보여주었던 개혁들을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700년 전 원격조종"


▶그는 다시 왕에 즉위하고 고려로 가지 않았습니다. 계속 원나라의 대도에 머무르면서 원격으로 나라를 관리했는데요. 제안대군 왕숙에게 정치를 대행하게 하고 자신은 원나라에 머물면서 문서상으로 나라를 관리했습니다.


▶원나라의 황실조차도 그에게 고려로 돌아가서 관리를 잘하라고 말하지만 끝까지 듣지 않았는데요. 그는 고려라는 자리가 그렇게 싫은지 자신의 아들 충숙왕에게 재위 5년 만에 국왕 자리를 넘겨주고 심왕의 자리는 조카인 왕고에게 물려주며 연경에서 '만권당'을 설립하여 학문과 고전 연구에 힘썼습니다.

▶처음 즉위에서 보여주었던 모습이 그대로 이어졌다면 그는 고려 역사에서 조금은 좋은 왕으로 표현되었겠지만 두 번째 즉위에서 보여준 모습으로 그냥 몽골인이라는 이미지가 강해져 버렸습니다. 이후 충선왕은 환관 임백관과 다툼이 생겨서 토번까지 유배를 갔다가 이제현의 상소로 3년 후에 돌아오고 원나라 수도 대도에서 소일을 하다가 1325년 5월에 사망하게 됩니다. 잠시 고려의 왕이었던 것을 제외하면 그냥 몽골인이라고 표현해도 좋은 왕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