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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국시대의 치고 수혜자인 도요토미 히데요시. 물론 도쿠가와가 나중에 먹긴 했지만 전국시대에 '대머리 쥐', '원숭이'라는 별명의 서민에서 일본 조정 최고의 자리인 간파구(관백)의 자리까지 오른 인물로 호불호가 많이 가려지는 인물입니다. 비상한 잔머리로 자신의 엄청난 업적을 남겼다며 대단하다 평가하는 한국인도 있을 정도입니다. 거기다가 히데요시는 글도 읽지 못하는 문맹이었습니다.

관백이라는 최고 자리에 오른 인물이지만 특이한 점은 현재 일본인들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정확한 사인을 모른다는 겁니다. 대한민국 역사상 반일감정의 가장 근원이 되는 인물인데요. 그 죽음을 둘러싼 여러 추측들을 한번 모아봤습니다.


"히데요시 죽다."


▶1598년 교토에 벚꽃이 활짝 피면서 히데요시는 성대한 다이고의 꽃놀이를 준비합니다. 삼보원에서 있던 이 꽃놀이에는 손님 1,300명이 넘게 몰렸으며 여성들에게 3개의 의상을 준비시키며 엄청 크게 벌어졌는데요. 이때 들어간 의상비만 지금의 엔화로 39억 엔이 초과했다는 설이 있다고 합니다.


▶성대한 꽃놀이 이후에 급격하게 히데요시의 건강이 안 좋아졌다고 하는데요. 기독교 선도사 로드리게스는 히데요시의 절친한 사이로 그 당시의 히데요시를 표현할 때 "살이 너무 빠져서 인간인지 모르겠다, 마치 악마와 같았다."고 표현합니다. 이후에 히데요시의 건강이나 증상, 사망의 원인도 역사에 전혀 남아있지 않습니다.


"히데요시를 암살한 조선인"


▶임진왜란 초기 동래성을 함락시킨 왜군이 가족들을 죽이고 인질을 납치하여 일본으로 보냈는데 이 중에 양부하라는 아이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 아이는 단 하루 만에 일본어 회화를 습득하여 총명함을 알아본 히데요시가 양부하를 자신의 시종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이후에 강화 사신으로 심유경이 본토로 넘어와 히데요시를 만나게 되면서 양부하 & 심유경의 암살작전이 시작되었는데요. 당시 심유경은 건강한 기운을 얻을 수 있는 환약으로 히데요시를 속여서 점점 말려 죽이는 비소 계열의 독약을 주었다고 하는데요. 로드리게스의 증언과 시기가 겹치며 당시 조선과 일본 소수만 이 사실을 은연중에 이야기하던 가설이라고 합니다.


▶히데요시의 시종 양부하는 강화 이후에 조선으로 건너와서 90세까지 장수했다고 합니다. 이후에 염헌집, 성호사설, 국조인물고 등의 책에 기록되었는데 정사가 아닌 개인이 만든 책에 기록된 사실이어서 신빙성은 크지 않습니다.


"성병"


▶당시 의료기술이 발달되지 않아서 간단한 성병도 무시무시한 치사율을 보여주었는데요. 특히나 히데요시는 여색을 밝혀서 관백 당시에 많은 여자들을 거느렸다고 합니다. 이 가설은 우리나라에는 없지만 일본의 커뮤니티에서 자주 나오는 이야기라고 하네요.


"건강악화"


▶벚꽃놀이에 쓰이는 의상값만 39억 엔을 사용하는 최고의 권력자 히데요시가 고기나 맛은 있지만 영양이 나쁜 음식들을 많이 먹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특히나 외국에서 건너온 선교사들과 교류가 많았던 히데요시는 외국 음식에도 관심을 보였을 텐데요.


▶대장암으로 죽었을 가능성도 매우 크다고 알려져 있으며 일본 대부분의 사람들이 히데요시의 죽음을 건강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 사람으로 봤을 때 조선인이 죽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요. 혹시 일본에 자료가 남아있지 않은 이유도 정말 조선인이 죽여서 이를 부끄러워한 일본 고위층이 자료를 삭제한 것이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히데요시는 사실 일본의 우익 집단을 제외한 일반 사람들에게는 악한자로 통하는데요. 도쿠가와는 착한 사람, 히데요시는 나쁜 사람이라는 인식이 강한 거 같습니다. 자료를 조사하기 위하여 방문한 커뮤니티나 일본인 친구들의 증언에 의하면 좋다고 표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우익 성향이 강한 소수라고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