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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까만 바닷속에 숨어서 적군의 배로 부딪쳐 폭발하며 자폭하는 자폭 병기 가이텐. 기록으로 성과가 별로 없고 비인도적인 무기여서 가미카제처럼 대중들이 많이 아는 병기는 아닐 텐데요. 이 병기의 역사와 성과 장, 단점을 알아보겠습니다.

미사일처럼 생긴 어뢰에 사람이 직접 탑승하여(1인~2인) 조작하여 적군의 배를 침몰 시키는 자폭 어뢰입니다. 이름을 보면 형세(天), 되돌리려는(回) 한자를 사용하였지만 실상적으로는 탑승자를 하늘로 돌려보내는 무기이죠.


"왜 만들어졌을까?"


▷이 말도 안되는 자폭 어뢰는 삼국지에서 제갈량을 방문하는 유비처럼 삼고초려처럼 힘들게 만들어졌다고 기록되어 있는데요. 구로키 히로시 해군 대위가 처음 주장 후 비인도적인 방법이어서 거절당하게 됩니다.


▷이후 '과달카날 전투'에서 패배한 일본 해군. 이번엔 다케다 타마미 대위가 인간어뢰를 수뇌부에게 건의하게 되지만 이를 또 인정받지 못 합니다. 이후 1943년 이리사와 대위가 또 요청하는데 또 거절!.


▷1943년, 1944년에 걸쳐서 처음 주장한 구로키 대위가 다시 주장하게 되면서 1944년 2월 26일 결국 '승조원의 탈출장치가 있는 병기여야 한다.'는 전제조건하에 시험 제작을 승낙하게 됩니다.


▷저 사람들이 나쁜 사람이고 수뇌부는 어쩔 수 없이 승인해준 거 같지만 전쟁 후 책임을 전가하는 건 다른 자료에서도 많이 찾아볼 수 있는 방법입니다. 특히 일본, 독일, 이탈리아의 전쟁 후 소수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증언은 많이 찾아볼 수 있죠.


"탈출구를 만들었을까?"


▷1944년 오오이리시마의 발사장에서 실험이 이루어졌는데 탈출 방안을 고려하여 처음 개발은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어뢰를 조종하는 일은 그 당시 기술로 매우 힘들었고 더 큰 타격을 주기 위하여 계속해서 크기를 크게 만들게 됩니다.


▷그러면서 결국 엄청난 능력을 가지진 않았지만 개발의 성과가 보이게 되고 구로키 대위의 제안에 따라서 이름을 가이텐이라고 명칭 하게 되면서 병기는 만들어졌지만 끝내 탈출 장비는 고려도 하지 않았습니다.


"병기로서 우수했나?"


▷가이텐은 1형부터 4형까지 개발에 개발을 거치는 단계가 있었는데요. 승조원도 1명에서 2명으로 늘어나며 바닷속에서 조종을 하는 거에 초점이 맞추어졌습니다. 장점으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수면 아래에서 적을 격침하기 때문에 가미카제보다도 더 위협적인 병기였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맞출 수 있다면 위협적인 거죠. 생존한 특공대원의 증언에 따르면 "눈이 6개 손이 6개여도 조종하기 힘들다."는 증언이 있었고 훈련 중에 사망자도 7명이나 나오게 됩니다. 또한 장시간 운행하면 유독가스가 발생하여 적에게 가기 전에 조종사가 죽고 마는데요.


▷처음 개발자였던 구로키 대위가 정비 불량으로 사고를 당하게 되는데요. 사고에 대해서는 자세히 나오지 않지만 특공대원들이 "우리도 구로키를 뒤따르자!"라는 미화된 기록이 있기는 합니다.


"실제 전쟁에서 사용되었나요?"


▷공급이 수요를 뒤따라 오지 못할 정도로 가이텐은 개발에 난항을 겪었고 이후에 가이텐보다 쉽게 만드는 자살보트(신요)를 만들기도 하였는데요. 144년 11월 본격적으로 미군 급유함을 격침 시키면서 첫 데뷔를 하게 됩니다.


▷이후 총 8개의 부대가 창설되었고 해당하는 부대원들은 총 148기의 가이텐을 타고 출격하였으며 전쟁이 끝날 때까지 총 4격침, 2대파, 6소파의 기록을 세웁니다.


▷피해 받아 사망한 미군이 187명이 나왔지만, 개발 이후 가이텐 때문에 죽은 일본인이 총 145명, 참여한 인원만 1,375명, 개발에 투입된 비용을 계산했을 때 정말 비참한 실적입니다.


▷가이텐을 싣고 출격한 잠수함(보통 6대의 가이텐이 장착)이 싸워보지도 못하고 가는 길에 들켜서 격침당하는 일도 많았다고 하니까 실제 성과는 정말 참담한 것입니다.


▷전쟁이 끝나면서 훈련 중이던 훈련생들은 다행히 목숨을 유지할 수 있었으며, 이후에 자세한 기록들을 알려주게 됩니다. 영화 '출구 없는 바다'가 대표적인 가이텐 영화라고 볼 수 있는데요.


▷비슷한 병기로 이탈리아 해군, 영국 해군에서 인간어뢰를 운용했지만 탈출이 가능하게 어뢰를 밖에서 잠수부가 조종하여 적의 배를 격침하는 형태였는데요. 공격법이 다양해지면서 수중 침투, 파괴 전략 등으로 넓게 활용되었습니다. 성과도 더 높습니다.


▷지금도 야스쿠니 신사의 기념관에는 당시 가이텐 하나가 전시되어 있다고 하는데요. 자국민의 목숨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생각이 전쟁에 가장 큰 패배를 안겨준 것이 아닐지 생각되는 자폭 부대였습니다.